채점 없는 루틴이었습니다. 6개월간 매주 했다면 그래도 루틴 단계까진 갔을 겁니다. 루틴도 못이기는건 향상 없는 반복 같아요. 당시 코로나 시절이라 수강생은 달랑 세명이었습니다. 소셜 댄스는 즉흥성, 상호 교류의 에너지, 몸으로 체스 두듯 서로 모멘텀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 고정멤버에 기초 무브만 하다보니 발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엄청 친절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엉망으로 해도 좋게 말해주시니, 내가 잘하나보다 특별한 노력도 안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반년 지나도 뚝딱뚝딱거렸습니다.
스윙 파티가 잡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뭔가 바지런히 준비했겠지요. 또는 어설프더라도 내 지인들 앞에서 춤 한번 보여주기를 목표했다면 경로가 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전, 대입시험 걱정 안하는 고1 공부하듯 춤을 췄습니다.
향상의 좋은 연료는 도전입니다. 루틴도 일회성 프로젝트도, 닿을락 말락한 도전일 때 향상이 됩니다. 도전은 세 요소가 필요하지요. 목표, 방법 그리고 채점(goal, method & score)입니다. 도전적 목표를 설정하고, 방법을 선택한 후 결과를 보고 다시 목표를 잡는거죠. 실패하는 도전은 목표가 높아서가 아닙니다. 낮은 목표를 쉽게 달성하는게 향상에는 실패입니다. 무게를 세게 쳐서 근섬유에 손상이 가야 비로소 근육이 성장하는 것처럼요.
향상을 해킹할 수 있습니다. 주체성 관점으로 도전을 보는 겁니다. 목표를 충분히 어렵게 잡았는지, 방법을 달리했어야 하는지 주체성을 채점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주체성이 점점 늘어납니다. 이후 주체성은 향상을 가속화하는 부스터가 됩니다. 학습의 관제탑이 되니까요. 그리고 성공한 도전은 강해진 근육처럼 주체성으로 기억되지요. 남이 준 루틴은 시작점으론 좋지만, 내내 고수만 하면 주체성의 자리가 없고 향상이 더뎌집니다.
향상의 안티패턴(antipattern)도 있습니다. 제일 큰 건 디지털 딴짓입니다. 숏츠, 릴스, 모바일 게임 등 대놓고 뇌를 유혹하고 악습을 구축하는 훅(hook)류의 일들이죠. 경험의 원재료인 시간과 에너지, 어떤 경우 돈까지 말려버리니까요. 두번째는 가성비의 환상입니다. 가성비는 대체로 효율적이고 경제적입니다. 하지만 도전은 경제적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비효율의 구간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변모하는거니까요. 그래서 공략집 같은 지름길만 찾으면 원하는 결과는 빨리 나오지만 향상에는 도움이 안됩니다. 마지막은, 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데,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자입니다. 내 스스로 '이만하면 됐지.', '고생했으니 쉴 자격 있어'라는 말이 저절로 치밀지만 꾹 씹어 삼키고자 늘 노력합니다. 자기연민은 목표를 높이지 못할 뿐 아니라, 방법도 열화시키고 채점도 완화하여 한방에 학습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란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향상 경험은 경험의 지도 여섯칸의 화로입니다. 향상 경험 덕에 주체성이 강화되어, 공감과 연대, 소통과 업무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냅니다. 주체성을 키우기 위한 도전과 고난을 스스로 택하면 좋습니다. 시련, 역경, 충고, 야단맞기처럼 밖에서 오는 자극은 아프고 비쌉니다. 내가 자처한 고난은 훨씬 쌉니다. 이를 위한 최고의 습관은 주체성입니다. 도전적 목표와 자율적 방법선택, 그리고 향상을 위한 채점까지요.
그러면 루틴이 다시 보여요. 향상 경험의 버팀목입니다. 저는 버스 시스템처럼 보여요. 새로운 일을 의도적으로 노력하는건 품이 많이 듭니다. 택시를 부르는 것 같죠. 하지만 버스는 시간표대로 오니, 저는 타기만 하면 됩니다. 습관에 집중할 수 있어요. 따라서 좋은 루틴을 갖고 있으면 그 위에 작은 도전을 실어 향상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달리기 루틴이 있다면, 거리를 살살 늘려본다든지, 그림 공부 루틴이 있다면, 좀 더 완성도 높은 그림을 목표해본다든지요. 루틴은 들숨 날숨입니다. 신진대사처럼 내 삶의 리듬이 정규적으로 뛸 때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채점에서는 두가지를 강조하고 싶어요. 첫째, 채점을 습관화하세요. 5편에 말씀 드린 감정회고를 필두로 한 일간, 주간, 월간, 연간도 서서히 습관화하면 좋고, 회사나 개인적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짧게라도 회고하세요. 뭘 목표했는지, 어떤 시도를 했는지, 결과는 만족스러운지, 만일 중간에 이렇게 변경했다면 어땠을지, 뭘 배우고 깨달았는지, 다음에 또 한다면 뭘 바꿔볼지요.
둘째 가짜 채점표를 싹 걷어내야합니다. 남의 눈, 체면, 공략집, 스펙 같은 가짜 채점표는 학습을 망가뜨립니다. 내 정체성에 한 톨 씨앗을 심는게 아니라 남의 정체성, 평균적 기대를 대거 들여오니까요. 주체적인 내 채점표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런걸 써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