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멈춘 게 아니었습니다. 뉴스레터 기준으로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지난 주 리부팅 레터를 보낸 후 반응이 겁나고 설레었습니다. 다행히 구독 취소도 별로 없고, 외려 궁금했었다, 막연히 기다렸다는 반가운 메시지들을 보내주셔서 뭔가 감동이었습니다. 멈춘 2년 동안 뉴스레터는 제게 묘한 물건이었어요. 현실에서 뵙는 분들이, '뉴스레터 이제는 안하시나요?'라 물으실 때가 있고, '네, 언젠가 해야죠.' 대답하면서도, 막상 다시 시작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왜 멈췄나.
표면적인 이유는 한달간의 순례 여행이었지요. 다녀온 후 다시 바빠졌고, 정신 챙길 즈음엔 큰 어깨부상을 당했고, 부상 4일 후 갑자기 아버지 상 치르고, 결국 큰 어깨 수술하고, 이후로 집에서 머물며 몸추스린 후, 최근들어 재활을 시작한 사정이 있습니다.
왜 진짜 멈췄나.
하지만 속은 더 복잡했어요. 까미노 한달 걷는 동안 제 내면에선 많은 일이 생겼어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변했거든요. (그 깨달음은 이번 시즌 레터 내용에 살짝 배어있을 겁니다.) 변화의 핵심은 제 삶에 무엇이 진짜고 가짜냐라는 관점이 생긴겁니다. 제 주변 모든 돌들을 뒤집어보며 살피는 시간이 길었고 뭔가 찌릿 느낌이 왔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면 될지 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산이었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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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걸음 마친 후 산티아고 대성당 앞, 부자의 등짐.
가짜 아닌가?
그렇게 몰두하면서 이 뉴스레터도 우선 가짜로 분류되었습니다. 정확히는 진짜라는 증거를 못찾았어요. 그 전에도 매주 발행하면서 스스로도 '이게 맞나? 난 왜 이걸 하지?' 의문 속에 우직하게 이어만 갔습니다. 반응으로 보아, 열독자가 있는건 알겠는데, 과연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일견 지표가 되는, 구독자 증가라는 면에선 줄진 않지만, 찔끔찔끔 늘다보니 이게 세상에 쓸모있는 이야기인지 확신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저 가짜 욕심 아닌가 싶었습니다. 남들 하나 가지고 있는 뉴스레터 나도 있어야하지 한거 아닐까 스스로 비판적인 눈이 되었습니다.
왜 다시 못시작했나
그러다보니 뉴스레터는 차치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제가 어떤 글도 잘 못 쓰겠더라고요. 그나마 유지한건 책 읽은 리뷰만 꾸준히 썼습니다. 이게 그동안 제 유일한 세상과의 글 인연이었어요. 한번 소원해지니 더더욱 다시 시작하긴 어려웠습니다.
무거웠어요.
그래도 뭔가 해야지, 쓰려고 보면 AI가 모든 지식은 물론 글까지 자동으로 발행하는 이 시대, 제가 타닥타닥 치는 이 문장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무가치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혼란의 그 무렵, 자녀가 독립하고 부모님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삶이 덧없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우울증을 겪었고, 힘겹게 발을 질질 끌며 세월을 걷던 시기도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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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직후, 병상
왜 다시 시작하나
비교적 순탄했던 제 인생에 몇가지 폭풍우가 겹쳤고 전신마취 수술 전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삶이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려고 이렇게 거칠게 말을 거나?"
신기하게도, 진짜로 삶은 제게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정확히는 삶이 저를 거칠게 잡아 세운 덕에, 세상 귀기울이며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문득 깨달은 건 평범하지만 묵직한 한방이에요.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못할건 무엇인가? 경험이다. 경험은 다 아카이브 되지 못하고, 지금 이순간에도 피어난다. 시대가 필요로하는건 인간의 경험이다.
그러고 나니 이젠 뉴스레터가 진짜라고 느껴졌어요. 제 진심을 담은 이야기, 귀기울여 듣는 여러분, 이 사이 오가는 대화는 각자의 자양분이 되는 경험이고, 뉴스레터는 그 토대가 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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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를 지나 땅끝. 끝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깨달음
앞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12편 한 시즌입니다. 저랑 이야기 나눠 주시겠어요?
읽고 떠오른 게 있으면 한 줄만 답장 주세요. 제가 직접 읽고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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