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지도 여섯 칸 중 마지막은 공명 경험입니다. 가장 모호하며 추상적인 경험이라 맨 뒤에 두었습니다. 공명 경험은, 사람들 사이에서 동기화되고 고조되는 사회적 움직임을 일으키는 경험입니다. 마케팅과 소비자 세일즈가 좋은 사례입니다. 기업 내에서는,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를 할 때 공명을 도외시할 수 없습니다. HR의 많은 성과도 공명을 이해해야 합니다. 개인적 브랜딩, 글쓰기, 바이럴 모두 공명 위에서 돌아가는 활동입니다.
저도 아직 어렵습니다. 모든 경험이 모인 종합판이기도 합니다. 공감 능력을 토대로, 내 취향의 특정 부분이 대중 취향의 평균과 분산을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그 과정은 비선형적이라 엄청난 주도성으로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장면 1, 2, 3처럼 좋게도 작용하고 나쁜 쪽으로도 작용하니 어디로 튈지 예상이 어렵습니다.
제가 뉴스레터를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선, 오프라인을 넘는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매회 공들여 써주시는 답신들이 제겐 정말 감사 이상의 경험이에요. 영감과 깨달음도 많습니다. 다른 이유는 제 공명 경험을 쌓는 겁니다. 회사 규모나 강의 규모의 오프라인 모임은 그래도 어느 정도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일정 숫자 이상의 경험은 저도 잘 모릅니다. 이번 레터만 해도 시즌 시작 전 구독자가 400명 초반이었고 시즌 동안 500명은 넘는 게 개인적 목표였는데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 나가신 분보다 새로 오신 분이 많긴 하지만, 생각보다 신규 유입이 적고 무엇보다 어떤 연유로 구독하신 건지 감도 못 잡고 있습니다. 측정기 달고 클로드 써서 분석하는 건 피상이고 사후적일 뿐, 어떻게 글을 써야 새로 사람이 몰려올지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공명이 어려운 건 창발(emergence)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심리 예측은 관계 경험이나 소통 경험의 마음 이론이 어느 정도 제공해줍니다. 하지만 창발할 때는 원자적 개인 심리가 서로 부딪히고 영향을 주고받다가, 집단적으로 움직입니다. 분자 알갱이의 상태와 다른 공기의 압력, 온도처럼요. 집단은 사회적으로 거동하며 열광, 공포, 긴장, 기피합니다. 하데스타운의 가사처럼, 로한의 기병대처럼요. 분위기가 생기고 여론이 형성됩니다. 이 상황에서 분자적 개인을 놓고 힘써도 역부족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창발은 정밀하게 예측이 어렵습니다. 같은 노래가 작년엔 묻혔다가, 올해 역주행하는 신기한 현상을, 사후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사전적으로 기획하기는 매우매우 어렵습니다.
'난 그런 큰일 안 해' 라고 생각하면 공명 경험은 없어도 될까요. 그럴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업무에서 꼭 전국 규모의 바이럴만 취급하는 게 아닙니다. 가벼운 프로젝트라도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면 개인의 행동과 집단의 행동이 다른 창발적 성향을 띱니다. 이에 대한 이해가 낮으면 실패하거나 비용이 증가합니다. 공명 경험은 피드백이 늦고 모호해서 배움이 어려운 사악한 학습 환경의 끝판왕이니까요. 장면 #3에서 제가 퇴직연금을 도입할 때는, 복수의 금융사를 불러 직원들에게 직접 설명할 기회를 주어 회사에 별로 유리한 제도가 아님을 자연스럽게 알게 했습니다. 또한 개개인이 완전 자유롭게 DB/DC 중 선택하도록 충분히 설명해 회사가 특정 선호도가 없음을 명백히 했고, 매끄럽게 마무리지었습니다. 작은 사례지만 일의 맥을 짚어 제어해 나가는 건 공명 경험의 진가입니다.
그럼, 공명 경험을 쌓는 비결은 뭘까요. 경험의 지도 다른 칸처럼 빠르고 가벼운 시도가 핵심입니다.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명 경험은 책에도 잘 안 나옵니다. 어떤 사후적 설명은 있겠지만, 지금 눈앞에 수십 명을 두고 무언가 행동을 조율하고 결과를 내는 건 실전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해야 하고, 해봐야만 배웁니다. 우선 블로그 같이 가볍지만 공개되는 글이라도 써보세요. 더 좋은 건 작은 모임을 해보세요. 모이면 두 테이블 넘는 규모로요. 회사라면 여러 부서가 협업하는 다기능팀(cross-functional team)의 일을 만들거나 합류하는 것도 좋은 시도입니다.
공명 경험은 업무 경험과 다릅니다. 중첩되는 부분도 있지만, 업무 경험보다 더 느리고 사악한 학습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AI에 대비되는 특별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가볍고 다양한 시도와 깨달음을 거쳐, 오랜 시간 동안 연성됩니다. 그래서 꾸준히 추구할 필요가 있지요.
여러분의 공명 경험은 어떠신가요.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드린 여섯 칸 경험의 지도는 어떠신가요. 더 강한 칸은 어디고, 빨리 채우고 싶은 칸은 어디인가요? 여태껏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여러분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읽으며 든 생각이나 소감을 들려주시면 저도 더 신날 것 같네요. 허락해 주신 글은 다른 구독자분들과 함께 보도록 모아 두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아, 한 가지 의견을 여쭙습니다. 뉴스레터가 이제 두 편이 남았고, 이번 시즌은 마감됩니다. 시즌 종료 기념으로 구독자분들과 서울에서 하루 걷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 들었습니다. 하루 순례길, 자연 속에서 저랑 같이 걸으실래요? 의향 있으시면 아래 투표 부탁드립니다. 10명 이상 관심 있으시면 추진해 볼게요. :)
같이 걸을게요 좋은데 하루는 길어요 이번엔 응원만 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