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약속드린 지도를 드립니다. 이게 아빠가 생각하는 지도다. 빛이 파리한 어느 봄날 걷다가 깨달음이 왔고, 집에 들어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사회 초년생인 딸과 아들을 불러 제 생각을 이야기 해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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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보여준 경험의 지도, 첫 초안 (2026년 5월 4일)
그날은, 큰 수술 후 집에만 있어야 했던 괴로운 6주의 막바지였습니다. 집에 갇힌 김에, 폐관 수련하듯 AI 에이전트 사용법을 익혔지요. 텍스트와 영상 강의를 통해 닥치는대로 배우고, 하루 종일 에이전트를 이리저리 써봤습니다. 익숙해질 무렵,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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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쓰면, 지금까지 못하던 일 중, 이런 게 구체적으로 가능해질 테니 세상이 흔들리겠구나. 그러나, 모든 곳에 AI가 스며들었다고 세상이 자동으로 돌아갈까? 결국 두가지 등가교환이 혁신의 관문이 될 것 같다. 첫째, 고객에게 돈 받는 일. 자동화니 워크플로우니 HOOTL이니 온갖 난해한 개념은 돈 받은 이후의 문제다. 둘째, 다음 관문은 월급이다. 매출이 일어났다면 성장과 지속가능성의 문제로 넘어간다. 그때 팀이 필요하다. 누굴 써야 하는지, 왜 써야 할지, 무엇에 돈 줄지의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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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애들은 어떡하지? 갑자기 숨이 턱 막혔습니다. 'AI 격차'를 쓴 강협 님은, "AI 에이전트를 사용하면, 증강(augmentation)과 자동화(automation)가 가능해진다"고 말합니다. AI로 증강되면 두가지 여파가 생기죠. 한명이 여러 몫을 하기 때문에, 필요 총량이 적을 것입니다. 한명을 채용한다면, 오랜 시간 월급 줘가며 가르쳐야 할 사람은 아니겠지요. 자동화로 가면 더 문제가 커요. 자동화의 대상은 워크플로우고, 그 내용은 암묵지로 채워질 것입니다. 즉, 도메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자동화에서 역할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의미하는 바는, 사회 초년생에겐 엄청난 시련의 시대가 왔다는 점입니다.
애들에게 바라는 두가지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첫째, 도메인 지식과 실전 경험을 가져야 한다. 이젠 '알려주시면 해볼게요' 대신 '해봤습니다'에서 결정적 판가름이 나는 시대입니다. 하찮게 보이는 일이라도 실제 돈이 돌아가는 곳, 고객이 구매하고, 월급을 지불하는 현장을 구르는 건 급여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둘째, 인간력이다. 앞서 말한 주체성(책임감), 공감(사람 마음 읽기), 세계관(취향)은 그 사람의 독특한 경험 이력이며, 빠르고 강력한 AI의 반대편에서 방향과 속도, 강도에 개입하는 조절자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해집니다.
현장에서 굴러라. 이게 제가 저 표를 그려주며 애들에게 해준 말입니다. 경험으로 가득한 곳은, 예컨대 시장입니다. 돈이 있고 사람이 많습니다. 도메인 지식은 하나의 표상이지만, 사람과 돈이 엮이며 개인이 성장해야 할 때 우린 많은 태도와 습관, 생각의 씨앗이 필요합니다. 신독하는 법, 정의감, 관계 맺는 법,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 사랑하는 법 등. 이 중 집에서 안전담요 쓰고 누워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게 과연 애들만의 문제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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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지도, 여섯 칸 (6 Panels Model of Experience). CC BY 4.0, Tony Kim
지식보다, 경험입니다. 그 경험의 지도 여섯 칸은 이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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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기준 하단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외연의 확장입니다. 개인, 대인, 사회. 이 중 사회적 경험이 가장 어렵습니다. 복잡계라 그렇습니다. 업무 경험이 주로 도메인 지식이라면, 공명 경험은 사회적 영향력의 경험입니다. 왼쪽 열은 존재기반이며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는 느린 경험 자본입니다. 오른쪽 열은 목적기반이라 주로 습득하게 되지만 이조차 진지한 노력과 열의가 필요합니다. 왼쪽 열이 근간이지만, 더 우등한 것도 아니고 좌우 열은 상호작용합니다. 정체성이 향상의 이유를 주고, 향상 경험이 다시 정체성을 갱신하듯, 관계가 소통을 개선하고 소통 경험이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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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지도는 왜 유용할까요. 살며 겪는 일들이 경험이라면, 경험 자본은 그 경험을 증류한 것입니다. 농도도 진하지만,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추출한 본질이니까요. 따라서 왼쪽 열이든 오른쪽 열이든 매우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반면, 우린 스스로의 경험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경험이 편중된 채로 모른 채 오래 지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더 유용한 경험을 향해 나가기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경험의 지도 여섯 칸은 현재 내 상태를 매핑해보고, 본인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더 노력할 부분이 어딘지 살펴보기 좋습니다. 그래서 경험의 지도라고 불렀습니다.
우린 종종 경험의 미로에 빠집니다. 예컨대, 경험의 지도 오른쪽 열이 목적 기반이고 빠른 자본이라고 해서 그저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더 느린 경험 자본을 의식적으로 축적하지 않으면 이내 한계에 부딪힙니다. '생산성 덕후'가 루틴은 잘 지키지만 내면이 공허하기도 하고, 피상적 네트워킹으로 주소록은 빵빵해도 힘들 때 소주 한잔 같이할 사람이 없다든지, 미끼와 후크를 남발하며 그로스해킹적 사고로 표면적 성장에만 목매단다든지요. 이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
한번만 경험의 지도를 찬찬히 봐주시겠어요? 좌우 열은 다 소중하되, 빠름과 느림의 속성을 이해하고 서서히 시간으로 연성한다는 점, 그리고 큰 틀에서 내 상태를 체크해 보는 건 여러 모로 도움된다는 점에서 여러분의 경험자본을 떠올려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뭔가 깨달음이 있으시다면 저도 기쁠 겁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2막에서는 이 6개의 경험 자본 칸을 채우는 방법에 대해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대략의 모양만 보여드리고 차근차근 말씀 드릴게요.
이 참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쌓아 오신 경험의 지도는 어떤 모양인가요? 빈 칸이 있어도 좋습니다. 지도를 그려 주셔도 되고 말로 몇 줄 적어 주셔도 좋습니다. 자신 있는 칸, 보강하고 싶은 칸에 대해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주신 사연은 다 읽어보고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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